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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너지와 한계
    카테고리 없음 2023. 8. 2. 19:11

    1. 우울증 걸려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공감할텐데 난 우울증을 겪고부터는 밧데리 성능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버린 느낌이다. 이걸 채우려면 혼자서 멍때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충전이 느리고 겨우 완충이 되어도 남들의 절반밖에 차지 않는 느낌.

    내가 아는 사람중에 아들 셋을 낳고 하나를 더 가져서 곧 출산을 앞둔 사람이 있는데 난 그냥 이 사람이 너무 신기하다. 난 먹고 씻고 치우고 내 한몸 돌보는 것만도 숨이 차는데 남편에 애들까지 건사하고 그러고나서도 넷째를 바랄 수 있다는 게... 더 대단한 건 이분 남편도 중증 우울증을 앓았던 전력이 있어서 밧데리 성능이 나랑 비슷하다. 그래서 많은 부분 부인이 더 바쁘게 애써야 한다...

    예를 들면 이 부부는 시골에 사는데 인근이 죄다 농가라 출입로와 마당의 잡초를 관리해야 한다. (잡초가 크게 자라도록 내버려뒀을 때의 문제가 뭐냐면 인근 밭까지 풀씨가 퍼져서 이웃들의 농사에 해를 끼침.)
    부인이 둘째를 임신하고 만삭이 되고부턴 집 입구의 잡초를 제때제때 제거할 수 없어 마냥 내버려두는 바람에 집주인이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았던 적도 있다.

    이런 남편을 부지런히 건사하면서 애를 셋이나 키우는 삶... 상상만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물론 이건 나만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정작 본인은 매우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심.)


    2. 쓸데없이 예민해지고 날이 선다는 건 누군가를 배려하고 존중해줄 에너지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가능한한 힘을 안쓰고 사람 안마주치고 적게 움직이면서 사는 것만을 목표로 살았는데... 그렇게 살다보니 밧데리 용량이 늘기는 커녕 점점 더 줄더라고.

    사실은 바로 이게 내가 운동에 집착하는 이유임. 대부분의 여유와 상냥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걸 우연히 시작한 근력운동으로 깨달았다. 전철에 빈자리가 없다고 짜증내고, 버스가 너무 안온다고 짜증내고, 친구들이랑 여행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상처주고 상처입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여유와 평안을 누리려면... 득근만이 답임 ㅠㅠ


    3. 예전에 친구랑 교회 아주머니들 국적에 따라 파가 갈려서 허구헌날 옥신각신 서로 죽이지 못해 사는 거에 대한 원인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한국 아주머니들은 우리 식구라는 바운더리 안에 들어오면 일단은 챙겨주는데 그거를 싹 무시하는 제3세계 외국인(예를 들어 중국)의 행태를 볼 때마다 열이 받아서 그 난리를 치는 거다.

    란 소리를 듣고 충격받음.

    그동안 그렇게 괴롭힘 당한 이유를 깨달았달까. 하지만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느니 차라리 그냥 단명을 하고싶다. 인간들 너무 지긋지긋해서 오래 살고 싶지가 않다.


    4. 이번달의 가장 중요한 계획은 이사였다.
    태어나 한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 부모님이 노쇠하신 지금이라도 아파트에서 편히 지내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지금 사는 집이 너무 좁아서 불편하다고 불만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마침 다른 가족이 좋은 조건의 아파트 정보를 알려줘서 온 가족이 보러 갈 생각이었으나 하루만에 포기한 몇가지 이유.

    아파트가 있는 지역이 a시라고 생각했는데 b시였다. a시는 다른 친척이 산다. 친척의 사업장에서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또 그 지역 사는 친척이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참이라 이 기회에 가까이 살면서 틈틈이 언어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b시라면 a시까지 걸리는 이동시간이 지금 사는 곳이랑 크게 차이가 없어서 메리트가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엄마다. 우리엄마는 엄청난 외향성의 사람인데 어느정도냐면 병원에 입원할 경우 반드시 16인 이상의 다인실에 해야한다. 1인실에 있으면 외롭고 심심해서 반나절도 못가 미쳐버리기 때문에. 한번은 나 외국 살때 우리집에 와서는 24시간도 안되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했다 심심하다고;

    이런 사람이 연고 하나 없는 b시에서 잘 지낼 수 있을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사를 가도 지금 사는 동네에 아줌마들 만나러 출근도장 찍을 것이 뻔한데, 이동시간이 30분도 걸리지 않는데다가 직행 버스도 있고 전철도 있는 a시에 비해 b시는 대중교통의 구림으로 악명이 높다. a시에 비슷한 조건이 나오면 몰라도 굳이 그 돈을 주고 b시에서 살 필요가 있느냐 이사가면 보나마나 지금 가는 동네의 친구들 집에 묵는다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걸? 하니 엄마도 바로 납득하여 견학신청 취소함...

    아무튼 어렵다. 평생 살 것도 아니고 길어야 5~6년 거주할 아파트를 찾아보는데도 이렇게 맘에 걸리는 조건들이 많으니 전세기간 끝날 때마다 이사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상상도 안간다. 부동산 가격도 미쳤고 지금 사는 동네는 재개발 될 기미도 없고 아무튼 재산 관련된 문제만 생각하면 그냥 너무 골치가 아프다.

    요즘 달다구리와 라면을 평생 포기할 각오를 하면서 이렇게 좋아하는 걸 순순히 포기하게 되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재산을 지키고 불리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그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결혼해서 배우자 챙기고 애 낳아서 키우는 고통에 비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겠지... 나이 먹는 거 너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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