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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나와 꽃반지
    Journal 2024. 5. 18. 18:01

    미나는 소스케의 8살난 여동생이다. 이번엔 미나랑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같이 숙제도 하고 저녁도 먹고 단둘이 손잡고 심부름도 다녀오고 공원에 놀러도 가고. 휴일엔 아라카와 유원지에 가서 관람차도 탔다.


    집에 놀러가면 그림을 그려주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거나 색종이로 꽃을 만들어주는 다정한 아이. 한번도 날 빈손으로 보낸 적이 없는 점이 제 엄마를 꼭 닮았다.

    미나가 만들어준 꽃 옆에서 토미카 자랑하는 소스케


    몇년전만 해도 미나는 한국말을 아주 잘했는데, 소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한국말을 일절 안한다. 내가 한국말을 하면 알아는 듣는데 본인의 어설픈 한국말을 좀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이번엔 나름 열심히 한국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줘서 정말 기뻤다.

    남자애들은 자기과시욕이 심해서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애들은 자기검열이 심해서 시도도 못해보는 상황이 많다는 걸 내 인생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껴온 터라 미나에겐 늘 열심히 격려를 해주고 있다. 괜찮아 그까짓게 뭐라고. 별것도 아냐 괜찮아.

    유원지에서 세번 연속 노란색 관람차를 탄게 실망스러웠는지 미나가 돌아가는 길에 짜증을 냈다.

    - 이모도 한국가는 비행기를 놓쳤을 때 짜증이 났어. 그런데 비행기를 놓친 덕에 미나랑 이렇게 유원지에서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었잖아. 지금은 싫은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중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어. 그건 아무도 모르는거야.

    - 숙제 빨리 끝내버리고 노니까 너무 좋지? 이모도 산수숙제 어려워서 미나 나이 때 너무 힘들었어. 지금은 어렵지만 그래도 시간 지나면 다 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 이런 걸로 질질 짜면 나중에 아빠처럼 큰일 하겠어? 이런걸로 울 필요가 전혀 없어, 괜찮아 괜찮아.

    - 나중에 크면 책방을 하고 싶다고? 미나는 책을 좋아하는구나. 이모도 책 읽는 거 좋아하는데 나중에 좋아하는 책 서로 추천해주자.

    - 미나야 이거는 진짜 중요한 얘긴데,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뭔 줄 알아? 일본어를 배운거야.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에서 살게 됐고 여기서 예수님도 만나고 미나 엄마도 만나고 미나도 만났잖아. 그 밖에도 사이좋은 친구가 엄청 많이 생겼지. 이건 다 이모가 일본어를 공부해서야. 미나도 한국어나 영어를 계속 배웠으면 좋겠어. 물론 지금은 어렵겠지만 꾸준히 공부해서 나중에 이모보다 좋은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 한국어 하는 친구들, 영어 하는 친구들 만나서 친해지면 진짜 재밌겠지?


    너무 엄격한 룰에 갇혀서 살아가는 일본 아이들이 가끔은 너무 불쌍하고 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네들이 학교 밖에도 수 많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국적도 나이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다 같이 맛있는 거 먹고 힘든 일을 나누고, 나도나도 그런 적 있다며 맞장구 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삶이 너무 팍팍하게 느껴질 때 나에겐 이런 추억들이 약간의 피로 회복제 역할을 한다, 마치 미나가 만들어준 꽃반지처럼.


    늘 다정한 미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주변에 좋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모래알처럼 많아졌으면 좋겠다. 미나가 나에게 준 과분한 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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