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전에 미리 싱크대 공사, 도배와 장판을 끝냈고 이사 직전에 붙박이 장도 들어서서 사실상 대부분의 공사를 마무리하고 이사를 했다. 미친듯이 돈을 쏟아부었더니 낡고 오래된 집도 그럭저럭 봐줄만한 집이 됐다.
입주청소가 거의 끝나간다. 4년에 한번씩은 이사를 하는데 우린 한번도 입주청소를 전문업자에게 맡긴 적이 없다. 늘 직접한다. 이번에는 욕실 리모델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수가 넓어도 비교적 수월할 줄 알았다. 줄눈 공사로 인한 백시멘트 제거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사 나간 사람들이 초강력 접착제 고리를 집안 여기저기 너무 많이 붙여놔서 제거하는데만 반나절을 보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고소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사실 우리가 이사온 집은 예전에 살았던 적이 있는 곳이다. 오래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남은 식구들은 이 집에서 나와 뿔뿔이 흩어졌다. 몇년 후 어느정도 사태가 수습되어 가족들은 다시 모여살게 되었지만 그 집으로 돌아가진 못하고 아주 오랫동안 작은 집에 여럿이 다닥다닥 붙어 살아야했다.
몇년 후 내가 취직을 하면서 독립을 하게 되고 외국에도 가고... 십년 가까이를 떨어져 지내다 결국은 다시 가족과 함께 살게 됐지만 이미 좁은 집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는 그 집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전세계약 종료일이 다가올 때마다 만약에 이번에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가 들어가 살자고 했지만 어김없이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났고, 계단 오르기가 부쩍 힘겨워진 엄마를 생각하면 그 고층으로 다시 들어갈 일은 두번다시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십년만에 우리는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세를 준 집이라 여기저기 너무 낡았고 청소만 해도 큰일이었지만 어찌어찌 마무리가 되어간다. 빌트인 인덕션(요즘 부쩍 청소가 힘들어진 엄마를 위해)과 도어락 등등을 설치하고 거실에 달 커튼을 수선하면 정말 모든 과제가 끝난다. 그제까지만 해도 방문을 열면 화장실문과 현관, 주방이 한눈에 보이는 집에 살다가 주방까지 한참을 걸어가야하는 집에 오니 적응이 안된다. 핸드폰 둔 곳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정말 한참동안 찾아야한다.
원래 난 세상에서 가사노동을 제일 싫어한다. 설거지랑 물걸레질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런데 오늘 온종일 욕실 천장 구석구석을 닦으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화장실 두개 달린 집에 사는게 몇년만인지. 나 혼자 쓰는 화장실이라고 생각하니 비어져나온 페인트자국을 긁어내는 일 마저 즐겁다. 내친김에 세탁기도 구석구석 닦았다.
이제는 언제든 집에 손님을 맞이 할 수 있다. 미나랑 소스케를 초대해서 강아지랑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식탁 옆 창밖으로는 한강의 야경도 감상할 수 있다. 아마 내년 불꽃축제는 주방에서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막힌 창문이 없으니 사방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바람을 만끽하며 넓은 거실 한가운데에 쌓인 빨래를 널어뒀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아름답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계절이 행복하다.
아마 몇년 후면 엄마의 거동이 크게 불편해질테니 이 집에서 계속 살기는 어려울 것이고 로봇다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우리는 또다시 고단한 이사를 해야할 것이다. 혹은 우리가족이 뿔뿔이 흝어지는 일이 다시 닥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에 대하여 크게 감사하며 기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