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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기빙 디너와 송구영신Journal 2021. 12. 15. 02:46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친구가 차려줬던 미국식 땡스기빙 디너. 어렵게 공수한 중고 대형 오븐으로 혼자서도 갖가지 요리와 파이를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식들이 무려 가정요리라니. 미국애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사치스런 요리를 어른들과 나눠먹으며 자라는구나. 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엄마한테 혼나가며 동그랑땡을 오백개씩 빚으며 명절을 맞이했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이런 음식을 먹고 자랐으면 문방구에서 파는 몇백원짜리 군것질거리는 쳐다도 보지 않는 굳건한 인물로 살았을 것 같다.
혼자사는 집의 좁은 식탁에 다 펼쳐놓기도 어려운 요리들을 여럿이 모여서 나눠먹었다. 태어나서 보낸 연말연시 중 제일 행복한 하루였다. 친구가 남은 요리들 중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 타파에 싸줘서 그후로도 며칠 내내 행복했던 것 같다.
그후로 연말만 되면 구글에 땡스기빙 디너. 땡스기빙 상차림. 추수감사절 디너 등등을 한글로 검색해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교포 주부들이 1년 중 가장 정성을 들이는 상차림을 볼 수 있다. 그 사진들을 보다보면 마음이 몽글해지고 따뜻해진다. 코로나가 터지고부터는 조금 외로운 연말연시도 씩씩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전 교회분들과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다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한해의 감사했던 기억들을 돌아보고 준비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뭔가 신기했다. 크리스마스는 시간 지나면 그냥 오는거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건 생각도 못해봤다. 되게 유익하고 좋은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여러사람에게 상처받을 일이 많았는데 모두 깨끗이 용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년을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얘기하면 더이상 그 사람들과 엮일 일이 없어져서 더이상 상처받을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상처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내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오랜기간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는데 이게 내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교제들이 올해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새해엔 더욱 크게 성장해서 서로의 존재를 더욱 기뻐하며 교류할 수 있기를.
사실 내 인생에 있어서 나에게 지금 정말로 필요한게 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새해에는 그걸 찾아가며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Jour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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