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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불빛과 기쁨Journal 2022. 1. 19. 06:27
오늘은 거진 한달반 만에 혼자서 밖에 나가 다리가 아플 때까지 마음껏 걸었다. 무릎밑으로 내려오는 두꺼운 패딩에 딸린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는 아무도 없는 눈 쌓인 공원의 언덕길을 뒤뚱뒤뚱 걸어올라 한강의 불빛을 내려다보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언젠가 자유롭게 거동할 수 없는 날이 오거든 꼭 오늘의 기쁨을 떠올리자고 다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가장 오랜 꿈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멀리 떠나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를 아는 이가 하나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죽고싶었다. 나에게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고 시간은 그저 견뎌야하는 것이었다. 머리가 커지고부턴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늘 그 속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비에 젖은 단풍의 아름다움, 겨울밤의 상쾌한 찬공기, 햇볕에 잘 마른 이불의 포근함 같은 사소한 행복에 마음이 부풀어오르고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현재를 과거의 젊음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항상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함께 큰 소리로 노래하고 싶고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도 싶고 날이 새도록 수다도 떨고 싶지만 설령 그 모든게 당장은 불가능할지라도 지금의 나에겐 나름의 행복이 있다.
인생엔 불행이 있기에 지금 허락된 작은 행복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을 용기를 내는 법도 알지 못한다.
기쁨은 땅거미가 지는 어스름한 저녁 인적없는 공원에 일제히 들어오는 따스한 조명 불빛 같은 것이다. 희망은 밥짓는 냄새로 잠이 깨는 분주한 아침 같은 것이다. 사랑은 차갑고 쓸쓸한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모닥불의 온기 같은 것이다. 용서는 마음속 상처에 날개를 달아 멀리 날려보낸 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정말로 귀한 것 가치있는 것들 중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 있단말인가. 요행히 주어진것에 감사할 순 있지만 주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원망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이 모든 걸 몰랐던 그 시절로는 정말이지 두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Jour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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