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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1868)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들TV 2022. 9. 4. 11:31
이 작품에 나오는 아버지의 직업이 군인이 아니라 목사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매들의 아버지는 징집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북전쟁에 참가해서 노예 해방에 이바지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살아서 돌아오지만 부상을 입는다.
어머니는 늘 자선으로 바쁜 사람이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무사히 살아돌아오기를 바라고 기다리면서 아프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에 매진한다. 그녀는 크리스마스에 어렵게 마련한 만찬을 더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양보하지 않겠느냐고 자매들에게 제안한다. 자매들은 기꺼이 버터 바른 빵을 나누어 먹으며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셋째 베스는 각자의 사정으로 분주한 자매들을 뒤로하고 혼자서 아픈 이웃을 간병하다 성홍열이 전염되어 결국 너무 어린나이에 죽는다.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은 참 한결같이 상황이 어떻든 형편이 어떻든 간에 자기가 옳다고 믿고 그러므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망설임없이 실행에 옮긴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그러므로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며 자아실현에 몰두하던 조가 후일 학교를 설립하고 후학양성에 매진하는 흐름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가족들이 모두 저런 사람들이니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의 모든 캐릭터들을 통해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는 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경의 두번째 계명의 실천이며 이게 바로 이 작품이 나타내고자하는 핵심 정신이다.
상황에 지지 않고, 형편에 지지 않고. 가난과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스스로 해야할 일을 행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는 것.
이 작품이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사랑 받는 것은 그런 정신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마치가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착하고 선량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돕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결국 스스로를 돕게 만든다.
마치 부인은 누군가가 남편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었을 것이다. 남편이 전쟁터에서도 따뜻한 밥 한끼를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음식을 양보했을 것이다. 만약 전쟁터에서 남편이 크게 다친다면 누군가가 자신처럼 기꺼이 남편을 간병하고 돌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든 이웃을 보살피며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이웃을 위로하면서 스스로가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22-26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의 욕망을 비우고 타인의 필요를 우선해서 살피는 사람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 답게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마치 부부가 자신들의 삶을 통해 자매들에게 계승한 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바로 이런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차용한 모티브가 단지 자매들의 캐릭터와 지독한 가난 뿐이라면... 그건 원작에게 지나치게 무례한 짓 아닐까요?
어제 드라마를 보다보니 뭔가 한숨이 나오더라구. 가난혐오와 배금주의야 말로 작금의 시대정신이라면 뭐 할말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