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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를 안갔어
    Journal 2023. 3. 21. 19:12

    요즘 자녀 문제로 자주 연락을 주는 분이 있다. 등교를 거부한지 2년이 넘어가는 딸아이 소라의 문제를 무척 걱정하고 계시는 분인데, 난 애를 낳아본 적도 없고 외국인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어서 도움은 전혀 안되지만 할 수 있는게 들어주는 것 뿐이라 열심히 듣고 있다.

    아버지는 소라가 아주 어릴 때 헤어져 지금은 거의 연락하지 않는 상태이고 작년부터는 교회에 오는 것도 거부하고 있어 날이 갈수록 더 염려가 커지는 것 같다.

    애가 학교를 가기 싫어한다고 해서 정말로 보내지 않는 일본 부모를 난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애가 원하는 걸 덮어주고 들어주는 건 오히려 방치 상태에 가까워보이고, 문제는 저런식으로 피한다고 해서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소라를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매일 저녁 운동 겸 산책을 하러 들르는 강 건너편에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취직을 했던 회사가 보인다. 푸근한 봄바람을 맞으며 먹어도 먹어도 끊임없이 허기지던 스물넷의 겨울을 생각한다. 나에겐 가족이 있고 멀쩡한 직장도 있고 만나는 남자도 있었지만 난 그 어디에서도 단 한번도 소속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어디서든 늘 겉돌기만 하고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지나치게 운이 좋은 탓인 것만 같고 여기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 모두가 나에게 등돌리고 사라져버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던 시절. 아버지가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부터 나는 아주 오랜동안 늘 그런 기분을 견디며 살아야했다.

    문득 지난 시절을 떠올리다 다시금 당신을 생각한다. 나처럼 아버지가 없지만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당신을.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늘 너무나 바쁘게 애를 쓰고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가는 당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외로움, 쓸쓸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는 다정하고 따뜻한 당신을.

    어제 소라를 위해 기도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라는 반드시 당신같은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도 엄마를 깊이 생각해주는 딸이고... 부모로서는 자식이 가지지 못한 것에 눈길이 가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게 당연하겠지만 남들이 다 가졌으니까 나도 당연히 가져야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제 직장도 없고 벌이도 전처럼 변변치 않고 여전히 외롭고 날 좋아해주는 사람도 없고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그시절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살아있어서 다행이고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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