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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행 때 부터 느낀 거지만 이 땅에서 내가 무언가를 바라면 늘 두번째에 이루어진다.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인플루엔자로 몸져누워 결국 만나지 못하고 이번 방문에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거나, 빌린 자전거를 돌려드리려고 목사님 사택을 찾아 30분을 빙빙 돌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다음날에야 찾을 수 있었다던가. 지난번 방문 때 미처 대접하지 못한 점심 식사는 이번 방문에 만들 수 있었다. 한번은 맘 속으로 식사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옆에 앉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결국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앉게 되어 무척 실망했고,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에는 교회에서도 식당에서도 자동차 안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의 옆에 하루종일 딱 붙어 앉아 지낼 수 있었다는 뭐 그런 진부한 이야기까지.
며칠전에도 오챠노미즈에 와서 헛탕을 쳤다. 크리스천 센터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는 김에 아랫층에 있는 선교단체 사무실에 들러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도움을 주신 분을 만나고 싶었는데, 요일을 착각해 집회도 없는 날에 방문을 해버렸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보니 사무실 문 마저 굳게 잠겨있었다. 미리 약속을 하고 방문한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한국에서 사온 차를 사무실 문고리에 걸어놓고 건물을 나왔다. 목적지도 없이 주변을 산책하고 있자니 정말이지 감회가 몰려왔다. 만약 그시절을 보내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다시 태어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치면 나는 지금 두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인생은 그 무엇을 손에 넣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모든 것이 부질 없었다. 그 어디에 있어도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없고 그 누구와도 교감을 해본 적 없고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인생을 망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단 한번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 없다. 누군가가 죽어도 슬프지 않고 오히려 부러웠다. 행복하게 눈을 빛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너무 신기했다. 대체 다들 뭐가 저렇게 즐거운걸까?
어쩌다 휴가가 생기면 열심히 짐을 챙겨서 도망을 갔다. 다른 나라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저축을 모두 써버렸다. 귀국할 날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옥죄어 왔다. 자꾸만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나를 가장 괴롭힌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도저히 허망한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다음날 다시 오챠노미즈를 찾았다. 집회에 참석했고 기대했던 설교말씀과 피아노 찬양을 들을 수 있었다. 5년 만이다. 5년전 이 집회를 통해서 무척 크게 위로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어 감사했다.
피아노를 연주해주시고 설교해주셨던 선교사님께서는 놀랍게도 나를 기억해주셨고 일정이 없거든 같이 식사 하자고 청해주셨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식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름에 다시 오거든 그때는 꼭 같이 식사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집회가 끝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보니 사무실이 열려있어서 선생님과도 거진 7년만에 재회했다. 코로나 때문에 일이 많이 줄었고 다른 본업도 생기셔서 이제 사무실은 주말에만 잠깐 여신다고 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계시면 인사나 드려야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 뵌건데, 치매를 앓으시던 어머니가 2년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터져서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엉엉 울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르지? 생각해보면 10년이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앞으로 10년 후면 더 많은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겠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정말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가장 위험한 시기에 나를 크게 사랑해주고 기도로 지탱해주었던 사람들. 이렇게 다시 보기 어려울 줄 알았으면 그때 실컷 더 사랑해주는 건데. 감사의 표현을 더 많이 많이 했으면 좋았을 것을...
누구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는 오챠노미즈 크리스천 센터의 교회에서 보낸 2년이었다. 나는 이 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받는 법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도 배웠다.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흘러넘친다. 태양이 눈부신 것도 그때와 똑같고 세련된 분위기와 거리에 쉴틈없이 몰아치는 젊은이들도 그대로인데 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내 인생의 가장 좋은 것들이 모두 두번째 인생에 와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내 첫번째 인생은 남들이 보기에 그다지 수치스럽거나 모자란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의 반복.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실패 뿐이었다. 나는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두번째 인생은 절대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정말로 원했던 바램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이번엔 이루어지지 않아도 두번째엔 반드시 이루어질테니까. 어쩌면 지난 여행과 이번 여행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건, 다소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원하는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내 마음 속에 심어주신 소원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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